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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사평역에서 / 곽재구
    2022. 10. 6. 05:4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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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사평역에서
    곽재구

   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
   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
   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
   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
    그믐처럼 몇은 졸고
   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
   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
   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
   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
   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
   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
   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
   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
   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
   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
    모두들 알고 있었다
   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
   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
   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
    그래 지금은 모두들
   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
    자정 넘으면
   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
   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
   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
   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

   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.


    막차가 아직 오지 않은 것처럼
    가을이 시작되면서
    눈을 기다린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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