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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쉽게 씌어진 시 / 윤동주
    2022. 10. 26. 05:55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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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(1948)
    쉽게 씌어진 시
    윤동주

   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
    육첩방(六疊房)은 남의 나라,
   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
    한 줄 시를 적어 볼까,
   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
   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
    대학 노-트를 끼고
   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.
   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
    하나, 둘, 죄다 잃어 버리고
    나는 무얼 바라
    나는 다만,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?
   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
   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
    부끄러운 일이다.
    육첩방은 남의 나라
   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,
   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,
   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,
   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
   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.


    가을이 깊어지면 윤동주의 시가 생각난다
    쉬운 것은 없다
    그거조차 부끄럽다는 것
   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
    가을은 더 깊어진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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